메타버스에 올라탄 의료계
지난 1월 서울대·서울대병원의 주도로 설립된 ‘의료메타버스연구회’는 의료메타버스 생태계 구축을 위한 국내 대학병원의 첫 시도다. 확장현실(XR), 디지털트윈, 블록체인,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 메타버스 기술과 의료가 융합한 ‘의료메타버스’라는 신산업이 출발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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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패러다임의 시대적 전환과 맞물려 의료와 메타버스 기술이 만났다. 환자 진단 및 치료에 대한 의료계의 관점이 바뀐 것이 가장 큰 계기였다. 과거에는 모든 환자에게 천편일률적인 의료서비스를 제공했다면, 오늘날 의료계 내부에서 환자 중심 서비스를 강화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환자 개개인의 상태를 고려한 맞춤형 의료, 더욱 정밀한 진단 및 치료, 환자의 적극적인 관여 등이 청사진으로 그려졌지만 이를 구현할 기술적 인프라가 뒷받침하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 기술적 지원이 하나둘 가능해지면서 메타버스 기반 의료서비스가 주목받고 있다.
이런 취지로 최근 발족한 의료메타버스연구회에서 공현중 서울대병원 융합의학과 교수는 기술정보 이사를 맡고 있다. 연구회는 서울대 외부에서도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을 구성원으로 영입했다. 의료진이 단독으로 의료메타버스 생태계를 형성하고 유지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현재 의료서비스 밸류체인은 분절된 부분이 많아요. 이제는 의료메타버스 참여자로서 산업계의 역할을 인정하고 그들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의료 패러다임이 환자 중심으로 바뀌고 있는 가운데 메타버스는 의료서비스를 질적으로 향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예요. 학회 구성원은 국내를 넘어 글로벌 단위로 확대될 것입니다. 의료메타버스학회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최초의 의료 기반 국제학회로 자리매김할 계획입니다.
공 교수를 비롯한 학회 구성원들은 확장현실(XR)과 의료를 융합한 활용 사례를 만들어가고 있다.
“확장현실 기술은 의료진이 실질적으로 필요성을 느끼는 분야에 선제적으로 도입하고 있어요. 크게 4개 분야에서 활용도가 높습니다. 의대생 교육과 전공의 훈련, 진단 및 플래닝 등 수술·시술 전 단계 및 디지털 치료제 등이죠. 확장현실 기술은 이제 먼 미래가 아니라 이미 구현되고 있어요. 내년이면 상용화 사례가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서울대병원에서는 외과 교수들이 기술 도입을 적극적으로 요청하고 있다. 갑상선비대증 수술과 충수절제술 교육이 대표적인 사례다. 공 교수에 따르면, 실제 수술장 환경을 가상현실(VR)로 구축하고 수술 도구를 사용하는 손 동작이 가능하도록 해 실감형 수술 교육을 구현했다. 그는 “이 외에도 외과 수술 교육을 돕는 미술 활용 사례는 계속 나올 것”이라며 “수술 과정에서 환자 안전을 지키려면 기술 교육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는 뇌, 손과 같은 근육을 동시에 조화롭게 쓰는 능력을 향상하는 교육을 말하는데, 단순히 교과서를 통해서 가르치기는 어렵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교육 효율성 문제를 주요 원인으로 짚었다. “주 80시간 근무 의무화 제도가 시행되면서 전공의 한 명당 근무시간이 상당히 줄었고 당연히 교육 시간도 부족해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수술에 앞서 시뮬레이션을 해보는 ‘디지털트윈 혼합 현실(MR)’ 구현 가능성도 기대된다. 이것이 가능해지면 VR로 수술계획을 세우고 증강현실(AR)을 이용해 연습해볼 수 있게 된다. 공 교수는 “시니어 교수들은 숙련도가 높지만 주니어 의사들은 만에 하나 실수할 수 있는 영역이 있다”며 어린이 환자의 두개골조기유합증 수술을 예로 들었다. “두개골을 잘라서 앞으로 빼는 수술 계획을 세웠을 경우, 각도가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뼈가 잘못된 방향으로 빠져나갈 수 있어 수술 전 훈련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제까지 공급자(의료진) 중심이었던 의료서비스가 환자 중심으로 전환하고 있는 가운데 환자·보호자의 정보공유에 공 교수는 확장현실이 큰 몫을 할 것으로 내다봤다.
“의료 패러다임이 바뀌면서 의료서비스에 대한 환자와 보호자의 만족도가 중요해지고 있죠. 수술 중 보호자를 안심시키는 일도 여기에 포함돼요. 이를 ‘AR 안경기반 환자원격동의’라고 합니다. 수술실에 있는 의사와 대기실에 있는 보호자가 AR을 이용해 실시간으로 환자 상태를 보면서 화상회의를 하는 것입니다.”
수술 과정에서 갑자기 계획이 변경되면 의사는 이를 보호자에게 설명해야 한다. 그러려면 의사가 수술 도중 보호자를 만나러 수술실 밖으로 나가야 하는데 이때 감염 위험성이 높아진다. AR을 이용하면 보호자와 안전하고 빠르게 의사소통할 수 있으며, 이해도를 높이는 효과가 있다.
디지털 치료제 상용화 눈앞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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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 교수는 올해 하반기, 늦어도 내년 초에는 디지털 치료제의 상용화 사례가 나올 것이라고 귀띔했다. 디지털 치료제란 질병이나 장애를 예방·관리·치료하는 소프트웨어를 말한다. 공 교수는 수술 전 어린이환자의 불안감과 통증을 완화시켜주는 VR 기반 디지털 치료제를 예로 들었다. 머리에 착용하는 VR 기기인 VRHMd(Head Mounted display)를 이용해 서울대 어린이병원과 수술실을 구현한 VR공간에 들어가면 어린이병원 공식 캐릭터가 아바타로 등장해 어린이환자의 흥미를 유발하는 방식이다.
“메타버스 기반의 환자 중심 의료가 병원의 수익성에 도움이 될까”란 질문에 공 교수는 “현재로서는 경제성보다는 장기적 관점에서 상용화 사례를 만들어 의료메타버스 시장을 확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의료 메타버스의 장래 시장성을 강조했다.
“한국 의료서비스를 받고 싶어 하는 외국인과 재외국민이 상당히 많아요.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으로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받기 위해서죠. 특히 재외국민은 의사소통 문제 때문에 한국 의료진을 찾곤 해요.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해외 유입 환자가 급격하게 줄었습니다. 글로벌 환자의 이동을 최소화하려면 메타버스를 이용한 원격의료나 건강검진이 구현돼야 합니다. 이러한 기술을 선제적으로 개발하면 향후 해외 수출도 가능할 것입니다.”
※ 공현중 교수는…
2000년 서울대 전자공학과 학사
2003년 서울대 의공학 석사
2009년 서울대 의공학 박사
2014년 SKSH(UAE 왕립병원) 의료정보센터 부센터장
2017년 충남대병원 의료정보센터 부센터장
2020년~현재 서울대병원 융합의학과 교수
2022년~현재 의료메타버스 학회(구 연구회) 기술정보이사
- 노유선 기자 noh.yousun@joongang.co.kr·사진 정준희 기자
[출처 : 포브스, 노유선 기자 _ https://jmagazine.joins.com/forbes/view/336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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